RAGE AGAINST THE MACHINE
INTRO : 개인적인 이야기 <1> 92년에 완성된 이 앨범을 93년 초에 우연히 들어 볼 기회가 있었다.
건네준 사람의 말로 미루어 보건대는 소속 레코드사가 이 팀을 한번 밀어보려고 어지간히 몸이
달아있나 보구나 하는 느낌이었고 그럴수록 왠지 속 깊은 곳에서는 미묘한 반발 심리가 작용하는
법칙에 발맞춰 가능한 한 편견을 갖지 않도록 노력하는 한에서 (의도적으로) 별 흥미를 갖지
않았다. 그런데 낯익은 충격의 (개인적 데모의 의도로 분신 자살하는 동남아 어느 지역-멍청하게도
어느 나라였던 지가 기억나지 않지만-의 승려의 모습을 담은 이것은 린지 브라이스의 널리 알려진
보도 사진)재킷부터 후에 마침내 들어보고 흠칫 놀란 사운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철두철미한
'反기성'으로서 가히 진정으로 성깔있는 레코드라 할 만 했다. 하지만 그 성깔로 인해 국내 소개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 또한 그때 동시에 감지했던 99%의 정확도의 예감이었다.
"IT'S THE BEATS AND LYRICS THEY FEAR". from <Take The Power Back> 하지만 나머지 1%가 그들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쉰(RAGE AGAINST THE MACHINE)의 동명 데뷔작(이자 문제작)인 이 앨범을
국내에 들여오는 사건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는 적중이 빗나가서 속상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
1%의 오차를 쌍수들고 반겨야 할 일이다. 'Parent Advisory' 스티커 악명의 결정판 같은 가사가
어떻게 국내에 반입될 수 있었나는 지금 문제되지 않는다. 중간 과정이야 어찌됐든, 단지 해외의
화제거리 정도만으로 피상적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이 앨범이 그 메시지를 국내에 제대로 된
모습으로 공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관건이며, 또한 긍정적인 사실이다. 특히, 다른 이들도
아니고 그들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쉰이니까 말이다. "I WAS BORN TO RAGE AGAINST' EM". from
<Know Your Enemy> 왜냐하면, 그들은 보기 드물게 음악의 정치적/ 사회적 행동주의를 강조하며 그를
몸소 아낌없이 실천해 보이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밴드명 '기계에 대한 분노'라는 표현도 이런
면에서 다분히 의미심장한 것으로서, 자타공인의 명문 하버드大 졸업생으로 밴드의 기타를 맡고
있는 탐 모렐로(Tom Morello /g)의 표현대로라면 '빈곤층과 소수 민족집단을 깔아뭉개고 젊은이들의
기를 죽이고 윽박지르는, 전국에 걸친 경찰력이 남용하는 억압권'이라든가 '모든 사람들을
고분고분한 소비자로 길들이는 파렴치한 기업 자본주의 원리' 등이 모두 자신들이 맞서(against)
분노하고자(rage) 하는 총체적인 기계(machine)들이다. 더군다나 이런 메시지를 직접 분노 순도
100%의 가사로 지어 불러(내뱉어) 주는 보컬 잭 덜라로차(Zack De La Rocha/ vo)의 모습을 보면
구태여 모렐로의 모토에 맞춰 그의 밴드 멤버의 방향성마저도 억지로 그에 끼워넣어진 것 같진
않다. 잭의 목소리는 모렐로의 리프 못지않게 스스로 매섭고 통렬하기 때문이다.
앨범을 직접 들어보면 누가 뭐라지 않아도 곧 눈치챌 수 있겠지만 사실(잭과 모렐로뿐만 아니라),
데이브 크루센(Dave Krusen)과 데이브 애브러제스(Dave Abbrezesse) 사이의 공백을 메꾸며 잠시나마
펄 잼(PEARL JAM)의 멤버로 훌륭히 뛰어주었던 드러머 브래드 윌크(Brad Wilk / dr. 그는 모렐로와
함께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쉰 이전의 그룹인 LOCK UP에 몸담았던 인물로 모렐로와는 오랜 친구
사이)와 하드코어와 스트리트 비트의 결합이라는 밴드의 사운드 성격을 더할나위없이 잘 숙지하고
있는 베이시스트 티미 씨(Timmy C./ b)의 플레이 역시 그들이 속한 집단의 전혀 나긋나긋하지 않은
핵심을 옹골지게 실천하고 있다.
"ANGER IS A GIFT". from <Freedom> 물론 정치적인 밴드, 행동주의 뮤지션들은 이들 외에도 충분히
많다. 클린턴 대통령의 경영과 정책에 관심이 지대한 조지아 출신의 지성체 알이엠(R. E. M.)은
어떤가. 아니면 아프리카인으로서의 긍지와 사회 모순에 대해 냉철한 시각을 들이대는 어레스티트
디벨롭먼트(ARRESTED DEVELOPMENT)는, 또 아니면 거리의 살벌한 진실을 전한다는
바이오해저드(BIOHAZARD)나 삶의 어두운 측면을 극대화하는 툴(TOOL)은 심지어 펄 잼이나 엘
세븐(L7)조차도 반대파들의 갖가지 위협을 감수하며 찬(贊) 낙태운동(Pro-Choice Campaign)에
동참하고 있다. 여기에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쉰이 갖는 차이점은 밴드의 어떤 '한 국면'인 저들의
행동주의 양식에 비해 이들은 그 메시지의 행동주의가 밴드의 존재 이유의 핵심을 사운드와 함께
동등하게 양분한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메시지가 사운드를 압도하는 지도 모른다.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쉰은 현재 사운드(특히 모렐로의 기발한 기타음)로서도 충분히 유니크한 존재로
대접받고 있지만(앨범 말미의 '샘플링 /키보드 /신서사이저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표기는 이와
관란하여 아주 건강한 자랑이라고 느껴진다), 특히 그 사고방식과 모토의 급진주의적 경향으로는
현재 활동중인 대표적인 젊은 밴드들 가운데서 단연 '주머니속의 송곳'으로서 두드러진다.
모택동과 체 게바라에 대한 모렐로의 견해나 <Wake Up>에 나타난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과 말콤 엑스(Malcolm X, 킹과 엑스는 모두 흑인 해방 운동가이며 둘다 암살당했다)의 모습,
감옥에 갇힌 레오너드 펠셔(Leonard Peltier, FBI 수사 요원 두 명을 살해했다는 혐의-다분히
모함의 기운이 짙은-로 현재 복역중인 인디언 인권 운동가)를 진지하게 소재삼은 <Freedom> 등은
정말로 미국에 있어 반체제성이 의심되는 위험한 색깔(붉은색?)와 방향(왼쪽?)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 모렐로는 자신이 反자본주의자라며 70년대 맥카시즘이 유행할 당시였다면 크게 낭패를 볼
발언을 한 적도 있다.) 이 모든 냉철한 분노는 마치 밴드가 유일하게 부여받은 천성인 것처럼
'한결같다'. 아예 부클렛에 표기조차 거부되어 있을 정도면 그 내용이 어떨 것인지 족히 짐작이
가는(표기가 되어있는 나머지 9곡의 가사도 이미 장난이 아니므로) <Killing In The Name>에서
그들은 기계라고 스스로 이름붙인 적(敵)인 총체적인 '시스템(체제)'애 대해 아주 직접적이고
필사적으로 반발하고 있으며, 중독적인 리듬 그루브와 모렐로로서는 꽤나 정석적인 솔로 플레이로
이 앨범에서 대표적으로 나설 수 있는 트랙 중 하나인 <Take The Power Back>은 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선동으로 가득하다. 이밖에도 레이지 어겐스크 더 머쉰의
유니크한 사운드 방법론을 체험할 수 있는 <Settle For Nothing>, <Bullet In The Head>(이 앨범의
정식 첫 싱글이었다), <Fistful Of Steel>, <Township Rebellion> 등 거의 모든 수록곡이 후회없는
오리지널리티를 틀어쥐고 있지만, 역시 앨범 전체를 통틀어 <Know Your Enemy>와 <Freedom>만큼은
그 무게가 조금 더 나가는게 사실이다. 여전한 메시지와 모렐로의 예의 유난스러운 수수께끼같은
(하모나이저 스타일의) 솔로뿐만 아니라 이 바닥에서 이름값 깨나 한다는 스티븐 퍼킨스(Stephen
Perkins, 前 JANE'S ADDICTION/ 現 PORNO FOR PYROS의 드러머)와 제임스 메이너드 키넌(James
Maynard Keenan, TOOL의 보컬)의 도움이 제공된 <Know Your Enemy>는 그들의 참여로 더욱
드라마틱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툴(TOOL)과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쉰간의 우정은 돈독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 두 밴드가 함께 입에 올려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만
하다(모렐로와 브래드, TOOL의 키넌, 그리고 FAITH NO MORE의 빌리 고울드는 같이 임시 밴드로 이번
KISS 트리뷰트 앨범 「Kiss My Ass」에도 참가했다). 그리고 <Freedom>은 전술된 바와 같이
레오너드 펠셔 사건을 소재로 하여 비디오를 제작함으로써 대중음악에서의 예술성과 상업성만을
양단으로 보는 일반적 견해에 행동주의적 정치성이라는 또다른 차원을 실천적으로 제시한 곡으로,
<Know Your Enemy>에 맞먹는 긴장감의 구성을 보여준다. 이 두 곡은 앨범 초반부의 연속된 세 곡의
진행과 함께 앨범을 살려주고 있는 실팍한 지점들이다.
"NOW YOU DO WHAT THEY YOLD YA. FUCK YOU. I WON'T DO WHAT YOU TELL ME". from <Killing In The
Name> 멤버 당사자들의 표현을 빌면 '배드 브레인스(BAD BRAINS)에서 말콤 엑스까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에서 체 게바라까지, 마이너 스레트(MINOR THREAT)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까지, 그리고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에서 클래쉬(THE CLASH)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쉰에 영향을 준 세력들이라고 한다. 물론 모렐로 개인에게 영향을 준 섹스
피스틀즈(SEX PISTOLS)나 잭의 우상이었던 헨리 롤린스(Henry Rollins)와 배드 릴리전(BAD
RELIGION)도 빠뜨릴 수 없고 조금만 더 캐보면 데보(DEVO)나 키스(KISS)같은 뜻밖의 존재들도
그들의 무의식적인 선배로 입에 올려진다. PMRC(미 상원의원 엘 고어의 부인 티퍼 고어가 선거
운동의 일환으로 조직했던 대중 음악 검열 장치)와 검열 제재에 항의하는 그들답게 나이가 지긋한
모렐로의 어머니조차도 아들 못지않게 자신이 창단한 단체 Parents For Rock & Rap의 활동에 열심인
열성파이고 모렐로의 아버지는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으로의 길을 인도한 마우마우 게릴라의
일원으로 케냐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또 베이시스트 티미는 밴드의 성격과는 다소 상이하게
과묵하고 단순한 캐릭터로 인상지워지며 자신이 좋아했던 밴드 가운데는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과 배드 브레인스가 있는데, 인사이드 아웃은 바로 보컬리스트 잭이 프론트맨으로 나서 예의 그
살벌한 폭언(!)을 제공한 첫 밴드라고 한다(이것은 또 무슨 Karma인가).
이밖에도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쉰의 배후에서 하나둘 비어져 나오는 흥미로운 사실들은 꽤 많다.
하지만 이는 어떤 사람이든지 캐리어를 가진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소유하고 있을 법한 것들이며,
주가가 오를수록 이런 것들은 더욱 기승을 부리며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법이다. 요컨대 인기의
반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현재 이들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환영받으며 인기가 좋은 것일까.
그들의 음악은 결코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종류의 사운드인데
말이다. 그러고보면 행동주의를 외치는 그들의 모토가 (애초 그들이 염려한 것처럼 사람들에게 겁을
주기보다는) 사람들의 확신에 찬 동조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라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신작
2집의 제작을 위한 스튜디오 작업이 진행중인 그들의 현재가 그 밀월 관계의 지속을 점치게 한다.
- 94년 8월 4일 성 문 영(HOT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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