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냐 반동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학자들은 정치사적 관점에서 보수주의의 태동을 대개 프랑스혁명 전후로 보고 있다. 전제군주체제가 혁명과정에 의해서 무너짐에 따라 이후 국가를 주도하기 위한 과정에서 '자유주의', '사회주의'와 함께 '보수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때의 보수주의는 프랑스혁명이 무너뜨린 구체제적 전통과 관습을 재건시키려는 의도로 만들어졌으므로 최종욱 교수의 말마따나 '반동적'일 수밖에 없었다(보수주의자들, 삼인, 29쪽). '보수주의'를 위에서 말한 그 '정치적·역사적 태생과정'과 함께 바라볼 경우, 이는 '근대성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에 최종욱 교수의 말대로 그것은 철저하게 '반동'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쓰는 '보수'라는 개념은 앞에서 말한 '보수주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우리는 '보수'라는 말을 쓸 때 흔히 '옛것을 아끼고 존중하는 것'이라고 인식한다. '보수'의 개념을 이렇게 규정지을 경우, 그것의 정당성에 따라 그'보수'는 역사적 관점에서 도리어 진보적인 것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난 '보수'라는 말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국사회에서 기득권 유지차원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변형된 '보수를 가장한 반동'들을 증오한다. 즉, '5·16'을 쿠데타가 아니라 혁명이라고 떠벌리는 김종필은 '보수'가 아니라 '반동'이다.
경상도를 방패삼아 부산에서 지역감정을 선동하는 한나라당은 그래서 '보수'가 아니라 '반동'이다. 그렇다면 '건전보수' 조선일보는?
한국사회의 '건전보수'임을 자처하는 조선일보가 스스로 '반동'임을 입증한 명쾌한(?) 자료가 여기 있다. 12월 28일 화요일 조선일보 사설 <갑작스런 '보수'의 자임자들>이 그 예이다.
♠ 보수가 아닌 반동의 특징 1 : '말'이면 다 '말'인줄 안다
<우리나라에서 결코 '보수'를 자처할 수 없는 국민회의와...>(사설)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 자체가 정당한 이념으로 성립하기 위해선 공통적으로 지켜져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개념정의의 일관성'이다. 그런데, 조선일보 논설위원 류근일은 불과 3년전에 각 정당의 '보수-개혁'논쟁을 모두 싸잡아 비판하면서 '국민회의 니네는 보수가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회의 사람들은 또 '신한국당의 개혁이 보수를 위한 방편이라면 보수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힐난한다. 아니 그렇다면 국민회의는 분명히 보수'를 뜻하는 '중도우파'가 아니더란 이야기인가? 국민회의 지도층과 국회의 원들은 '기득권'층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라도 된다는 소리 같아 되게 웃긴다.> (조선일보 96년 3월 3일자, 류근일 칼럼, <'말'이면 다 '말'인가>)
3년전에는 '분명히 보수를 뜻하는 중도우파가 아니냐'면서 따지더니, 이제 와선 국민회의는 '결코 보수를 자처할 수 없다'고 우긴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의 보수'를 비판하면 곧 '프롤레타리아'가 된다는 식의 그 막가파식 정치적 무지성도 정말 '되.게.웃.긴.다.' 정말 '말'이면 다 '말'인줄 안다.
♠ 보수가 아닌 반동의 특징 2 : 잡탕 끓여먹기
<우리는 어느 정당이, 또는 어느 정치인이 스스로 자신의 이념적 노선을 밝히는 자세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정당이건 정치인이건 적어도 자기 색깔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일관성을 보여왔어야 한다.>(사설)
그래서 어쩔려구? '자신의 이념적 노선 밝히'면 또 '제2의 최장집' 만들어서 빨간색 고추가루 넣어서 끓여 먹으려구? 비판할 생각 없다고 했는데 왜 최장집 물고 늘어졌니?
문제는 조선일보다. 조선일보의 논리에 따르면 최장집은 자유주의자라는 '자기 색깔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일관성'을 보여온 셈이다. 그런데 이때 조선일보는 무얼 했을까? 그 '빨갱이 만들기'라는 '확고한 의지와 일관성'을 보이기는커녕 여론이 불리해지니깐 슬그머니 꽁무니를 내리고 최장집의 글을 조선일보에 실어주는 것으로 사태를 무마했다. 사과성명 한번 낸 적 없다.
바로 이거다. 조선일보는 자신이 규정한 '보수'와 '진보'라는 냄비 속에 모든 것을 집어넣어 '잡탕'을 끓인다. 이 속에선 국민회의도 '보수'로 갔다가 하루아침에'진보'로 둔갑한다. 최장집은 이한우에 의해 '한국 정치학의 선구자'에서 하루아침에 '빨갱이'로 둔갑한다. 이게 조선일보가 말하는 '건전 보수'의 모습이다.
♠ 보수가 아닌 반동의 특징 3 : 여차하면 딴지걸기
<국가보안법 개정문제가 나왔을 때 그들(자민련과 이한동:류석원 주)은 과연 어 디에 있었나? 그들이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는가? 햇볕정책으로 우리의 대북 기본인식이 혼미해지고 있을 때 그들은 공개적으로 무슨 의견을 냈었나?>(사설)
치사하게시리... 이 아저씨들 또 시작이군... 이 이야기 안나오나 했어...
이 글에서 조선일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늠하는 척도로 '국가보안법'과 '햇볕정책'을 내세운다. '보수'눈엔 인권이 보일지 몰라도 '반동'눈에 인권이 보일리 없다. 아니다. 보여도 손으로 가린다. 그리고 옆눈길로 북한의 인권을 쳐다본다. 자기가 밟고 서있는 이 땅의 인권이 아닌 딴나라 인권을 쳐다본다. 그러니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짓밟고 북한을 적으로 규정해 이용해먹는 지배이데올로기의 총본산, '국가보안법'을 옹호한다.
혹시 조선일보는 위에서 말한 프랑스 혁명 이후의 버크와 같은 논리로 '보수주의'를 규정하는 건가? 인권이 근대성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전근대적 인권탄압의 도구인'국가보안법'이라는 '구체제적 전통과 관습'을 옹호하는 조선일보는 '반동'일 수밖에 없다.
햇볕정책으로 우리의 대북 기본인식이 혼미해졌다? 얼렐레. 보수주의자가 되려면 햇볕정책에도 딴지를 걸어야 하나? '우리의 대북 기본인식'이 뭔데? '우리의 대북기본인식'이라고 주장하는 '니네의 대북기본인식'은 북한을 적으로 규정해서 전쟁한판 벌이자는 거다. '보수'는 원래 전쟁을 좋아하나? 전쟁 좋아하는 건 파시스트들로 알고 있는데... 파시즘과 보수주의의 만남으로 반동세력의 전쟁음모는 불을 뿜는다... 와~ 짝짝짝~
♠ 보수가 아닌 반동의 특징 4 : 여전히 주제 파악 못한다.
<이제 총선이 다가오니까 이 정부의 노선에 실망한 계층의 표를 노리고 기회다 싶어 '보수'의 기치를 올리는 것은 아닌가?……국민회의와의 합당을 공공연하게 거론했던 자민련이 어떻게 방향을 선회해서 보수신당을 운위하게 됐는지, 그 전략적 배후에 심히 관심을 갖게 된다. 우리 정치권은 노선면에서도 널뛰듯 하는 인상이다.>(사설)
입 아프다. 지겹다. 짜증난다. 그대로 돌려준다.
<이제 총선이 다가오니까 이 정부의 노선에 실망한 계층의 표를 노리고 기회다 싶어 '반동'의 기치를 올리는 것은 아닌가?……국민회의를 보수라고 분명히 주장했던 조선일보가 어떻게 방향을 선회해서 '결코 보수를 자처할 수 없다'고 우기게 됐는지, 그 전략적 배후에 심히 분노를 갖게 된다. '반동' 조선일보는 모든 면에서도 주제파악 못하며 나대듯 하는 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