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주필의 <낙선운동 감상법>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은 1월 15일자 김대중 칼럼에서 <'낙선운동' 감상법>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며칠전부터 사설에서 낙선운동의 불법성 등을 주장하며 이에 반발해온 조선일보이기에 이 칼럼 역시 그같은 견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이번엔 그 비판의 근거로 '불법성'을 드는 것이 아니라 낙선운동의 본질을 왜곡하면서 그 의의를 비판하고 있다. 한번 살펴보자.
1. 낙선운동의 본질 왜곡
<대국적 견지에서 보는 낙선운동의 정치적 의미는 우리 정치권의 인적(人的) 교체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존의 정치권을 구(舊) 정치세력의 잔존으로 보는 관점에서 이번에 정치권의 판도를 싹 갈아보자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그러한 의도가 담겨져 있는가? 아니다. 총선시민연대가 밝힌 낙선운동 대상인물의 판정기준은 '교육·여성·환경·인권문제 등에 대한 개혁성과 의정활동부실, 지역감정 조장, 부정부패, 호화외유 여부'이다.(한겨레 1월 12일자) 즉, 시민단체들이 밝히는 낙선운동의 정치적 의미는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정치인, 비리와 부패를 저지른 정치인들을 단죄하는 것에 있지, 김대중 주필이 말하는 '인적교체'이니 '구 정치권 세력의 물갈이'를 암시하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김대중 주필은 왜 갑자기 있지도 않은 '세대교체론'을 들먹이는 것일까? 그 해답은 바로 다음에 있다.
2. '세대교체론'의 등장이유
<그러나 '낙선운동'을 각론적(各論的)으로 관찰하면 거기에서 특정 정치세력의 결과적인 부상(浮上)을 읽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특정 정치세력'은 김대중 주필이 곧 뒤에서 스스로 밝히는 대로 '국민회의'를 뜻한다. 자, 왜 낙선운동의 성공이 국민회의의 정치력을 강화시키는 작용을 하게 될 것인가? 그리고 김대중 주필의 '있지도 않은 세대교체론'과 이는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을 것인가? 계속 인용해보겠다.
<그럼에도 낙선운동이 결과적으로 가져올 효과를 예단해볼 수는 있다. 각 정당이 시민단체의 '명단'을 수용할지 거부할지, 수용하더라도 어느 정도일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렇더라도 적어도 '명단'이 지니는 의미는 기존 정치세력의 거부에 있다. 국민회의에는 '물갈이'의 효과가 있고 '명단'을 수용할 처지가 아닌 한나라당과 자민련에는 '낙선'에 중점이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논리전개방식이 도출된다. 두 가지 경우를 놓고 살펴보자.
A
: '낙선운동'의 정치적 의미는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정치인, 비리와 부패를 저지른
정치인들을 단죄하는 것에 있다.(시민단체들의 입장)
B : '낙선운동'의
정치적 의미는 기존 정치세력의 거부에 있다.(김대중 주필)
A의 경우를 놓고 볼 때, 낙선운동은 그 자체로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한국 정치인들의 고질적인 병폐가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정치행태, 그리고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그들의 도덕성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에 이러한 정치인들을 낙선시키고자 하는 행위는 정당하다.
B의 경우를 놓고 보면, 낙선운동은 '세대교체론'과 일맥상통하는 논리를 부여받는다. 즉, 어떠한 행위에 대한 분석이나 기준 없이 기존 정치세력을 거부하는 틀로서 '낙선운동'을 보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A의 경우나 B의 경우 모두 낙선운동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이득을 볼 대상과 손해를 볼 대상이 어느 정도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이득을 챙길 수 있는 집단은 보수정당들 가운데에서도 개혁적 성향의 인물이 그나마 상대적으로 많이 속해 있는 '국민회의'일 것이며, 이와 마찬가지 논리로 해석하면, 손해를 볼 대상은 '한나라당'과 '자민련'이다.
이러한 점을 김대중 주필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며, 국민회의에 대한 그러한 반사적 이익이 마땅치 않게 보였기에, 김대중 주필은 A의 논리가 아닌, 자신이 왜곡한 B의 논리로서 '낙선운동'을 해석하였던 것이다. 김주필이 A의 논리를 채택할 경우, 한나라당은 '지역감정'을 선동한 집단이라는 점을 김주필이 스스로 인정하게 될 '위험성'이 다분하기 때문에, 이를 슬그머니 B의 '세대교체론'으로 바꾸면서 한나라당이 별다른 잘못을 저지른 바 없음에도, 그저 '기존 정치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이기 때문에 시민단체들의 '낙선운동의 대상'이 되어버렸다는 식의 '면죄부'를 한나라당에 부여해주고 있는 것이다. 정말 고단수의 논리적 왜곡이다.
3. 어떤 말을 믿어야 하나?
김주필은 이와 같은 왜곡된 논리로 글을 전개해가면서 시민단체의 낙선운동과 국민회의가 입을 '반사적 이익'을 함께 열거해 나가면서, 이들이 상호간의 일정한 연계성을 지닌 것처럼 논지를 전개해 나간다. 그러나, 김주필은 자신이 그러한 의도에서 글을 전개하지 않은 것처럼 꾸미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둘러댄다.
<'낙선운동'을 추진하는 측에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다거나 특정세력이 배후에 있다고 말하는 야당의 주장에 동조할 근거는 없다.>
<그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오랜 기간 정치행로를 같이해온 국민회의를 옆으로 밀고 신당을 창당하는 의미와 시기적으로 묘하게 부합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마치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국민회의와 어떤 연계성을 지닌 것처럼 논지를 전개한다. 그리고나서는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라는 한마디로 궁색한 변명을 시도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럴 뿐'이라던 스스로의 변명을 이어지는 글에서는 스스로 뒤집는다.
<그렇다고 이들 시민단체가 어느 특정 정치세력이나 집단의 후원자로 자처하거나 인식되는 소극적 위치에 머물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낙선운동이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이들은 시민운동의 주도권을 잡으면서 특정 정치세력의 후원자를 넘어 조종자로 변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앞에서는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라더니 이젠 시민단체가 '특정 정치세력을 조종'하는 입장으로 변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김주필의 말들. 어떤 것을 믿어야 하는가?
4. 추리소설은 그만 쓰라.
스스로가 만들어낸 왜곡된 논리로 글을 전개하다보니 마무리 부분에서는 결국 시민단체의 본질에 대한 다음과 같은 왜곡으로 일관한다.
<어쩌면 앞으로 정당들이 이들의 눈치를 보는 상황으로 바뀔 수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이들 자신이 바로 정치세력으로 탈바꿈하는 것도 예상할 수 있다. 이제 한국정치는 정당인, 정치인들만의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말 그대로 '시민'들의 것도 아닌 상황으로 가고 있다.>
정당들이 시민단체들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이상한 것인가? 국회의원들이 대중들과의 직접적인 의사소통에 나서는 것은 대의정치의 기본이다. 그리고 그 다리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시민단체들이다. 여지껏 그게 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지역감정을 선동하고 비리와 부정으로 얼룩진 국회의원들을 뽑아놓고 이들에게 나라정치를 맡겨왔던 크나큰 실수를 범해왔으며, 그리하여 오늘날의 낙선운동과 같은 '저항'이 생겨나게 된 것이 아닌가.
김대중 주필이 할 일은 스스로 왜곡된 논리로 '낙선운동'의 정치적 연계성을 추리하는 '감상법'이나 한가로이 쓰고 있을 일이 아니라, 그동안 '지역감정'을 조장해온 의원들을 비판하고, 그러한 모습을 보여왔던 조선일보에 대한 자아비판을 수행하는 일이다. 그것이 되지 않는 한, 그러한 감상법은 별다른 설득력이 없는,그래서 정말 '잡담'에 불과한 '추리소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