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뉴스데스크, '편파보도의 전형'을 보여주다
방송일자
: 99/12/14
제 목 : 분별없는 폭언
*
이인용 앵커 :
13일 파업 유도 의혹 사건의 강원일 특별검사에게 민주노총 간부들이 욕설을 퍼부은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한동안 잠잠하던 폭력시위도 다시
벌어졌습니다. 이런 일을 보고 사회구성원들이다 함께 지켜야 할 선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나오고 있습니다. 윤도한 기자입니다.
* 윤도한 기자 :
13일 오후 서울 역삼동 파업 유도 특검팀 건물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100여 명이
시위를 했습니다. 이들 조합원 중 일부는 출동한 경찰관을 폭행하기도 했습니다.
항의 서한을 들고 특검팀 사무실로 들어간 민주노총 간부들의 언행이 거칠어지기
시작했습니다.
* 인터뷰 :
꼭 이렇게 해서 면담하는 것은 대통령도 아니고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한 두번도
아니고 이게 뭐고?
* 윤도한 기자 :
강원일 특별검사가 인사말을 건넸지만 분위기는 냉랭했습니다.
* 인터뷰 :
연일 고생이 많으십니다.
* 윤도한 기자 :
민주노총 간부들이 강원일 특검에게 반말을 하면서 일순간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 인터뷰 :
지금 누구보고 여보라고 그래요?
* 인터뷰 :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 인터뷰 :
당신이라니?
* 인터뷰 :
야이 △△…
니가 특검이야? 보통 검사도 안되고 기타 검사밖에 안되네. 진짜 이 정도 △△ 같으면
나도 하겠다.
* 인터뷰 :
그래, 해보시죠….
* 윤도한 기자 :
대화는 진행됐지만 민주노총 간부들의 거친 언행이 불쑥불쑥 튀어나왔습니다.
* 인터뷰 :
이런 놈하고 얘기할 필요도 없겠네.
* 인터뷰 :
말씀 삼가해요. 놈이 뭐요?
* 윤도한 기자 :
시민들은 민주노총 간부들의 행동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 김경식 :
시민으로서 생각할 때는 참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고요.
* 김명숙 :
듣기도 안 좋고 좀 그렇잖아요? 욕하는 거는…
* 윤도한 기자 :
특히, 누구보다도 특별검사의 독립성을 주장해야 할 노동계 대표들이 거친 언행으로
특별검사의 독립성을 해치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 이경철 :
전체적인 어떤 화해의 붕괴를 가져올 사회 여러 가지 안 좋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 한창호 :
공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욕설을 한다는 건 국민이라든지 청소년이라든지
그런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윤도한 기자 :
이와 함께 수백 명이 부상의 폭력시위를 비롯해 국회의원들의 욕설사태 역시 지켜야
할 법과 도덕의 마지막 선을 넘었다는 지적입니다. MBC 뉴스 윤도한입니다.
위 보도문은 지난 12월 14일 민노총 간부들이 강원일 특별검사를 항의방문하는 자리를 보도한 MBC 뉴스데스크의 보도내용 전문이다.
우선 민노총 간부들이 욕을 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 민노총 간부들 입장에서야 화가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은 이해가 되지만, 당일 취재진이 그렇게 모여있었고, 또 항의서한을 제출하는 자리였다면 조금은 신중한 언론플레이를 벌여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도의 문제로, 이번 보도에서 나타난 MBC의 보도 태도는 그야말로 '편파보도'의 전형이었다.
◈ 편파보도의 전형 1 : 이인용 앵커의 '동류항 묶기'
이인용 앵커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 13일 파업 유도 의혹 사건의 강원일 특별검사에게 민주노총 간부들이 욕설을 퍼부은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한동안 잠잠하던 폭력시위도 다시 벌어졌습니다. 이런 일을 보고 사회구성원들이 다 함께 지켜야 할 선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인용 앵커는 '2차 민중대회'와 '민노총 간부들의 욕설'을 한 동류항으로 묶었다. 그 근거는 바로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지켜야 할 선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지켜야 할 선'...? 그 선은 어디서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공중전화 앞에서 줄을 새치기하는 것 또한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지켜야 할 선을 무너뜨린 것'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인용 앵커는 그 근거 2가지로 '2차 민중대회의 폭력성'과 '민노총 간부의 욕설'을 하나로 묶어서 들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을 이인용 앵커는 '사회 구성원……무너졌다'로 보고 있지만, 그 말의 '보편성' 속에 숨겨진 의도는 바로 그 두 가지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쪽이 바로 '민주노총'이라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식의 보도를 통해 '민주노총은 사회구성원들이 다 함께 지켜야 할 선을 넘어뜨린 존재다.'라는 '무서운'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 두 가지 근거라도 모두 사실이라면 모를까... 분명 2차 민중대회는 경찰의 살인적인 진압으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다쳤던 사건이다. 즉 '집회의 자유'라는 평범한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지켜야 할 선'을 바로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의 폭력이 무너뜨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인용 앵커는 단지 '폭력시위'였다는 말로 대신하면서 민주노총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기에 바쁜 거다.
이 '동류항 묶기'는 맨 아래 윤도한 기자의 마무리 보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와 함께 수백 명이 부상의 폭력시위를 비롯해 국회의원들의 욕설사태 역시 지켜야 할 법과 도덕의 마지막 선을 넘었다는 지적입니다. MBC 뉴스 윤도한입니다.>
법과 도덕의 마지막 선을 넘었다고 한다. 욕 한번 한 걸 가지고, 법과 도덕의 마지막 선을 넘었단다... 대한민국 국민중에 욕 한번 안해본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욕 한번씩 해본 국민들 모두는 그럼 법적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인가? 황당하지 않은가. 바로 그 '황당함'으로 언론은 민주노총의 도덕성을 흡집내기에 바쁜 것이다.
◈ 편파보도의 전형 2 : '과정 떼먹기'
위 글을 보면 알겠지만, 윤도한 기자의 보도순서는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다.
1. 민노총 조합원이 경찰관을 폭행했다. -> 2. 민노총 간부들의 언행이 거칠어졌다. -> 3. 민주노총 간부들이 반말을 했다. -> 4. 대화가 진행되었다. -> 5. 다시 욕설이 이어졌다. -> 6. 시민 인터뷰 1. -> 7. 윤도한 기자 코멘트 -> 8. 시민 인터뷰2 -> 9. 윤도한 기자 코멘트
여기서 나타난 대로, 윤도한 기자의 보도태도는 시종일관 민주노총 간부들을 비난하는 논조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4번 과정에서 상호간에 어떤 내용의 대화가 오갔는지, 또 어떤 부분 때문에 민주노총 간부들이 욕을 하게 되었는지 윤도한 기자의 보도내용으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이럴때 시청자는 단지 화면에 비춰진 '욕설'만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하게 된다. TV뉴스란게 '영상'과 '기자의 멘트'가 같이 진행되고, 또 신문과는 달리 시청자가 녹화를 하지 않는 다음에야 먼저 보도된 내용을 다시 되돌아볼 수 없기에, TV뉴스에서의 화면 및 전체적인 보도순서가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게 크다. 그래서 방송사는 이런식의 '과정 떼먹기'를 편파보도수법으로 자주 써먹고 있는 것이다.
◈ '드러난 사실'이 되려 '진짜 사실'을 가릴 수 있다.
이 뉴스거리는 어찌보면 '가십거리'였을 수도 있는 문제에 불과할지 모른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욕'이란 건 누구나 한번쯤 할 수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제가 여기서 그날 민주노총 간부들이 욕설을 한 것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언론이 그 사건을 얼마만큼 '문제화' 시키느냐에 따라 그 사건의 비중은 물론, 본질까지도 달라지곤 한다. 신문을 보아하니, 조선일보는 그 사건을 사회면 하단에 상당히 큰 활자체로 비중있게 다루었다.
이날 항의방문의 목적은 '욕'하기 위함이 아니라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항의서한'에 담겨진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보도를 하는 게 우선이지 않은가?(만일 당일 민노총 간부들이 '욕설'을 하지 않고 조용히 항의서한만 전달하고 돌아갔다면, 대부분의 언론매체에서는 보도조차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 뉴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언론매체에서는 항의서한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를 밝히기는커녕, 당일 있었던 욕설만으로 그 날 있었던 모든 일을 평가지우는 본말이 전도된 상황을 연출하였다. 이 점에서 이번 보도는 '편파보도의 전형'이었다.
◈ 맺으면서...
사실 나는 강원일 검사는 욕먹어도 싸다고 생각한다. 강원일은 노태우 정권 시절 대검 중수부장까지 맡았던 사람이다. 재야 시민단체의 추천을 받아 강원일과 함께 특검팀에 합류했던 김형태씨는 대검 공안부에 대한 자신의 수사요구를 강원일이 묵살하자 수사팀에서 함께 일할 수 없다면서 특검팀을 뛰쳐나왔다.
아니나다를까... 수사결과는 '강희복의 개인작품'으로 결론지어졌고, 대검 공안부는 개입하지 않았다는 식의 결론을 맺었다. 검찰이 이 사건에 깊숙히 개입했음을 밝히는 문건까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강원일은 이들에 대한 구속은커녕, 심지어 그 문건을 작성한 사람조차 기소하지 않았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욕을 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