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고백하고 넘어갈 게 하나 있습니다. 저는 신창원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안타깝다'는
생각을 조금은 가졌습니다. '감성'이 '이성'을 앞지른 경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신창원의 수기의 절절함에 저도 모를 인간적인 '연민'이 '살인범'이라는 한 죄인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흐렸던 것입니다. 혹 여러분도 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신창원의 수기에 나타난
감옥내의 실태, 교화가 아닌 폭력과 인간성 파괴의 현장은 그야말로 참혹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며,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신창원의 '탈주'에 어느 순간부터인가 저 자신이 정당성을
부여했던 것임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며칠전에 그 참옥하기 짝이 없는 '감옥'에 한번 다녀왔습니다. 초등학교 다닐적 집 근처
오락실에서 주인누나 모르게 100원 훔치려다가 걸린 것을 뺀다면, 그동안 살아오면서 감옥에 갈만한
일을 저지른 적은 없었습니다만, 제 의지와는 다르게 다녀온 감옥이었지요. 어디냐구요?
안양구치소? 청송감호소? 아뇨. 거기가 어디냐 하면요, '신촌구치소'란 곳이었어요.
신촌구치소? 신촌에서 데모하다 잡히면 바로 즉결로 넘기려고 만들어 놓은 곳이냐구요? 그런건
아니구요. 신촌 제2백양로 한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술집 이름이에요. 얼마전 동아리 사람들을
만나서 2차로 갔던 곳이죠. 오랫동안 학교를 떠나있다보니 별의 별 술집이 다 생겼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는데, 신촌을 '아지트'로 삼는 사람들에겐 꽤나 입에 올려지는가 보더군요. 동아리 애들이
호기심에 한번 들어가보자고 하더군요.
입구에는 '정의사회구현'이라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던 그 구절까지 써있더군요. 검은 양복을
입은 덩치 좋은 아저씨가 떠억 버티고 있길래 무슨 나이트클럽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별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일행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는데, 그 아저씨가
나를 가리키며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 걸작. "저 분은 삼촌이세요?"(그 날, 그 순간 이후로 저는
아이들로부터 '삼촌'이라는 호칭을 계속 들어야 했답니다.)
술집에 따악 들어가니 정말 입이 안다물어지대요. 내부가 완전히 감옥처럼 만들어져 있었거든요.
잘은 기억이 안나지만, '접견실', 'OO호', '뺑기통' 등으로 구분을 지어놓았는데, 그것들은 모두
벽이 아닌 쇠창살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내부장식 하는데 정말 꽤나 돈 들였던 것 같습니다.
종업원들은 모두 교도관 옷을 입고 있더군요. 우리 일행이 한 8명인가 되었는데, 일행중에 제
동기와 그 녀석 여자친구가 있었어요. 우리가 들어가자마자 한 여자 종업원이 그 두명에게 수갑을
채인 후, 이름표를 가슴에 들게 하더니 사진을 찍더군요.
종업원들이 교도관 행세를 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죄수 취급 받는 우리 손님들에겐 퍽이나
불친절하게 대하더군요. 술을 갖다달라고 했더니, 얼굴에 인상 팍 쓰고 반말끼 있는 말투로
대답하더군요.
이런 몇가지 '사소한' 것들 때문에 기분이 더욱 나빠졌던 건 사실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감옥이라는
공간까지 상술에 이용해 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제일 한심하게 여겨지더군요. 물론 경제가
어려워지다보니 갖가지 기발한 이벤트를 만드는 건 그들 나름대로의 자구책이니 이해할 수 있다
손치더라도, 그러한 경향이 반사회적인 것인지 아닌지는 최소한 따져보고 판단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폭력과 협박이 난무하는 교도소의 억압적, 반인간적인 분위기가 교도관 차림의
종업원들의 불친절한 태도로 전화되는 것을 보니 정말 혀가 끌끌 차이더군요.
매년 한번씩 명동성당에서는 양심수 가족을 두고 있는 민가협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주최하는 '일일
감옥체험'이란 것이 열린답니다. 심지어 그 '신촌구치소'와 몇백미터 거리도 되지 않는 저희
학교에서도 몇 년전 대동제 기간에 양심수 김성만씨가 있었던 0.9평짜리 감옥을 전시해놓고
학생들이 직접 그 안에 들어가보는 행사를 마련하기도 했었죠. '일일감옥체험'과 '신촌구치소'의 그
차이는 바로 감옥을 '현실적인 대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상술에 써먹기 위한 '호기심과 재미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의 차이입니다. 감옥을 희화화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그러나 진정으로 웃지
못할 이 사회의 현실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