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의 짝짓기...<사랑의 스튜디오>

매주 일요일 아침 MBC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가운데 <사랑의 스튜디오>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예전에 SBS에선가 대학생들 수십여명이 '떼거지'로 몰려나와 진행되었던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현재로선 유일한 '미팅'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이 프로그램이 말썽을 빚은 적이 있습니다. 지난 8월 1일 방송에 출연했던 여자 출연자중 한

명이 바로 전날 SBS의 <멋진 만남>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과거에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한 남성을 4년간이나 혼자 좋아하다가 이번에 '찜'해서 사랑의 '허락'을 받아내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거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통신상에서 비난여론이 일자 <사랑의 스튜디오>

측은 '우리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고 해명하였습니다.

상투적이고, 때론 너무 낭만적인 경향도 없진 않지만... 정말 '사랑'이란 건 아름다운 거죠. 누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은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개인적인 '권리'구요. 그러나, 이와 같은

'사랑'의 '절대적 자유'라는 기본적인 가치관이 존재함과 더불어, 그에 따른 제약성, 가치관 역시

시대가 규정한 여러 가치관과 사회적 통념에 따라 다르기 마련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그

'중복출연자'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 출연자는 '난 이 사람을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도 사귀고

싶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출연자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한 여성이 동시에 두

남성을 사랑할 수 있을까?'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을 갖고 있는 듯 합니다. 물론, 이

'의문'이란 것은 현 시대의 '제약적인 가치관'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만약 우리 사회가

'일부일처제'의 개념이 뿌리박힌 사회가 아니라면, 어쩌면 이 여성의 행위 역시 이해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제약적인 가치관'이란 것은 대부분 부정적인 측면인 경우가 많습니다. 혼전순결을

강조하는 이데올로기나 동성애자에 대한 억압, 또 오랫동안 뿌리박혀 내려온 동성동본에 대한 혼인

불가규정(지금은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과 같은 경우가 그러합니다. '일부일처제'나 아랍

지역의 '일부다처제'의 경우 역시 남성 중심의 권력사회에서 순종적인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체제적 이데올로기가 개인에 대한 억압체계로 발전한 것이기도 합니다.

좀더 좁은 의미에서 보자면, 현실적인 '제약성'이란 바로 남녀 대상의 '사회적인 위치'라는 것으로

집약되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외모와 학벌과 같은 것이 연애 상대자로서의 주요한

관심거리가 되는 것이죠.

이 <사랑의 스튜디오> 역시 이러한 '제약성'을 널리 유포하는데 이바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사랑의 스튜디오>의 제작진은 '우리는 그저 남녀 사이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 뿐'이라고 할 지

모르지만, 프로그램 진행 과정의 면면을 살펴보게 되면, 우리는 그러한 제약성이 이미 널리 퍼져

있음을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1. 출연자의 외형적 모습

정확한 통계자료가 존재하지 않지만, <사랑의 스튜디오>에 출연하는 남녀들은 대부분 다음과 같은

모습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 대부분 4년제 대학 졸업(여성들의 경우 대학재학생들도 많이 출연함)

(2) 남성의 연령이 여성의 연령보다 높음

(3) 대다수가 서울 출신 출연자

(4) 거의 대부분 사회적으로 인기 있는 직업을 갖고 있음(실직자 전혀 없음)

(남성 : 의사, 대기업 직원, 대학원 재학, 여성 : 대학생, 대기업 및 중소기업 직원)

(5) 여성들의 경우 대다수가 사회가 규정하는 '예쁜 얼굴'에 해당됨

이 기준에 해당되는 남성 및 여성을 일반적인 사회적 기준으로 돌려놓아볼 때, 이들 모두는 현

시대에서 연애상대자로서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의

스튜디오>를 시청하는 사람들의 이유이자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만약에 <사랑의 스튜디오>가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는 농촌 총각들이나 장애인들의 만남을 주선한다면, 그 시청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바로 여기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남녀들은 다시 한 번 프로그램을 통해 재규정되며, 그들의

사회적 위치나 외모가 '연애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된다는 사실이 시청자 개개인에게 각인되고

있는 것입니다.

2. 프로그램 진행 과정

<사랑의 스튜디오>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프로그램 진행과정을 갖고 있습니다.

(1) 남녀 출연자 개인 소개 → 자막으로 각 출연자의 나이, 출신학교, 현 직업 등이 표기되어

보여집니다

(2) 1차 커플 발표 → 이때 결정된 커플들의 각 '조화도'(?)가 수치로 자막에 나타납니다

(3) 커플간 스피드 퀴즈

(4) 춤추고 노래하기(타이틀명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5) 최종 질문과 답변

(6) 사랑의 짝대기

(7) 커플 발표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2) 1차 커플 발표 중에서 이른바 커플간 '조화도'라는 것인데요.

출연자들이야 '첫인상'이라는 것이 있을 테니깐 뭐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도대체 그 '기계'가

만들어내는 '조화도'란 게 도대체 무얼 뜻하는 건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로 이야기 한

번 나누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수치'라는 것이 얼마나 정확한 것이며, 또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가장 황당한 것은 남녀 사이의 '애정지수'라는 것이

과연 수치로 표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컴퓨터 채점 오류로 순위가 뒤바뀌었던

98년 미스코리아 사건 기억나시죠? 컴퓨터의 오류가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수치화, 계량화할 수

있다는 인간의 사고방식 자체가 오류입니다.)

이 모든 것이 1시간 내에 이루어진다는 것 자체가 이 프로그램 자체가 철저한 준비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꽉 짜여진 틀에서 이루어지는가를 말해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한 남성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5)번의 경우 프로그램 이전에 미리 정해진 질문을 받아서 답변을

준비한다고 합니다.(나우누리 go plaza 2 51313) 1시간이란 급박한 시간 속에, 또 매주 같은

형식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다보니 출연자들은 프로그램에서 자신에 대한 진솔한 면을 밝히는 게

아니라, 도리어 프로그램 성격에 자신을 맞추게 되는 거죠. 이게 바로 <사랑의 스튜디오>가

대학생들이 하는 소개팅보다도 훨씬 못한 이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3. 프로그램의 성격

<사랑의 스튜디오>는 여타의 프로그램들과는 달리, 철저하게 시청자를 배제한 가운데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적어도 쇼 프로와 같은 경우,

적어도 시청자들이 원하는 가수와 노래를 들려주면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곤 하는데, 이 <사랑의

스튜디오>는 시청자와는 아무 연관성이 없는 일반 대중들간의 사적인 만남을 전파를 통해 각

시청자의 텔레비전에 보내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TV를 보고

있다는 느낌보단, 누군가를 은밀히 지켜보는 느낌을 더 많이 갖게 되는 것이죠. 바로 이 점이

<사랑의 스튜디오> 프로그램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쇼 프로나 드라마와 같은 경우,

자사 프로그램의 상업적 의도를 숨기려 하질 않습니다.(오히려 노골적으로 드러내죠) 그런데, 이

<사랑의 스튜디오>는 다릅니다. 즉, 자신들의 '상업성'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시청자 대중을 확보할 수 있음과 동시에 앞서 살펴본 '연애에 대한 사회적 제약성'과 같은 더 많은

사회적 가치관을 유포시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맞선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대중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다는 '객관성'이라는 허위적인

관념까지 포함된다는 것이죠.

4. 맺으며

<사랑의 스튜디오>는 '장수 프로그램'(?)임과 동시에, 그만큼의 시청률을 확보하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일주일간의 쌓인 피로를 푸는 나른한 일요일 오전엔 사람들이 TV 앞에 모이게 되기

마련이고, 그만큼 '보기에 편한' 프로그램이 바로 이 <사랑의 스튜디오>입니다. 아무런 잡념 없이

출연자들의 외모와 유머를 편안한 상태에서 감상할 수 있고, 또 나름대로 '1번이랑 3번이

될까?'하는 기대(?)와 궁금증 때문에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채널을 고정시킬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그러한 무의식 가운데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사회적인 관념들이 개개인 대중속에

심어지는 경향 역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의 스튜디오>가 '건강한 남녀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프로그램이 되고자 한다면, 우선

출연자들의 심사와 관련된 명확한 자료를 제시하여야 할 것입니다. 덧붙여서 이야기한다면, 굳이 이

프로그램을 거치지 않아도 원하는 상대를 찾을 수 있을 만한 우리 사회의 '엘리트'에 속하는 이들을

출연시킬 것이 아니라, 소외된 농촌 총각이나 장애인들에 대해서 눈길을 돌려보는 것도 이 사회

내에서 알려지지 않은 '건강한 사람들'을 찾는 방법이기도 할 것입니다.(지난주엔가

특집프로그램으로 경상도 전라도 커플들을 보여준다길래 한 번 보았더니 남자 출연자들 대부분이

의사 아니면, 연구소 출신이더군요) MBC는 공익 방송 맞죠?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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