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뚱뚱한 여성의 이미지는 왜 금기시되는가
- 로라 프레이저
최근 비만이 거대 언론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우리는 그간 우리가 점점 뚱뚱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늘 괴로워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사람들의 체중은 평균 8파운드(약 3.6㎏)가
증가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비만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혼란스럽다.
비만에 대한 몇몇 전문가들은 약간만 살이 찌는 것조차도 건강에 큰 위협이 된다고 말하고 있으나,
심리학자들이나 운동생리학자(exercise physiologist)들은 다이어트가 건강을 해칠 수 있으므로
운동이 중요하다면서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허리둘레의 군살보다 오히려 더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Self'지의 헤드라인 기사중 하나는 '15파운드의 비만이 당신을 죽일 수
있다'였음에 반해 뉴스위크(97. 4. 21)의 한 헤드라인 기사는 도리어 이렇게 묻고 있다. "뚱뚱한 게
무슨 대수인가?"
언론은 표면적으로는 체중에 대한 논의를 체계화하려고 하는 것 같지만, 많은 경우 그 내부에서
전달되는 이야기 속엔 마른 것보다 뚱뚱한 것을 더 싫어하는 우리 사회 깊이 자리잡은 도덕적, 미적
편견이 담겨 있다. 잡지들은 건강해지기 위해 살을 빼는 짓을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글을
실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약간이라도 살이 찐 사람의 사진을 싣는 것은 거부한다. 그들은 어떤
잡지가 팔리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잡지에 비만에 대한 글을 써온 기자로서, 또 최근 나를 '금주의 체중전문가'로 만들었던
다이어트 산업에 관한 책인 '살빼는 것(Losing It)'의 저자로서 나는 뚱뚱한 사람들에 대해 언론이
얼마나 심한 편견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 편견이 체중에 대한 진실을 얼마나 혼란스럽게
만드는가를 가까이에서 보아왔다.
요즘들어 언론은 미국의 모든 여성이 '사이즈 6'(size six : 문맥상으로 판단하건대 이것은 날씬한
몸매를 뜻하는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혹시 이에 대해 알고 계신
분은 메일로 알려주시기 바란다. : 역자 주)이 되어야 한다고 기대하는 것은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이지만, 그러한 신체적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인정하려고
하는 추세이다. 뉴스위크는 최근호 표지기사에서 운동만 지속적으로 한다면 체중은 건강에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체중에 대한 논쟁거리를 담고자 했다. 그러나 정작, 잡지판매의
상술적 측면으로 고안되는 표지에서는 완벽하게 조각된 두개의 토르소(torso)상이 그려져 있다.(그
토르소상이 남자일지 여자일지는 당신의 상상에 맡기겠다.)
그나마 낫다고 생각되는 여성잡지의 경우는 어떤가? 여성잡지를 만드는 편집자와 다수
페미니스트들은 다이어트의 위험성, 체중감량제의 사기, 신체적 이미지에 의한 여성문제 등에 대해
독자들에게 일관된 입장을 펼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대개 그러한 기사들은 날씬한 모델의 사진을
함께 싣고 있다. 내 글을 실은 한 기사에서는 그나마 뚱뚱한 여성의 사진이 하나 실렸는데, 그
여성은 한참 일하고 있는 여성의 사진이었다.
이에 대해 나는 그동안 편집자들에게 항의해왔다. 대부분의 편집자들은 이 기사에 단지 미소녀들의
사진만을 싣는 것은 독자들에 대한 (기자적) 봉사정신이 결코 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있으며,
실제적인 뚱뚱한 여성들의 사진이 실리지 못한 것에 대해 좌절하고 있다. 그들은 체중에 대해 좀더
관대하고 온건한 접근을 취하자는 그 기사의 메시지가 '수척한' 모델로 인해 훼손되었음을 알고
있다. 편집자들은 미술부서(art departments)와 충돌하지만, 대개 번번이 패배하고 만다. 전국적
여성잡지의 한 수석급 편집자는 그가 체중에 대한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에
상관없이 날씬하거나 매력적이지 않은 여성의 사진을 싣는 것은, 그 여성들이 바로 그 기사에서
다루는 주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으로 금기시된다고 내게 털어놓았다.
나는 이번에는 내 글에 135파운드(약 61㎏) 정도 돼보이는 '뚱뚱한'(한국이면 몰라도 미국에서는
61㎏의 체중을 가진 여성은 그다지 뚱뚱하지 않은 것 같다. 이는 저자의 역설적 어구라고 볼 수
있다. - 역자 주) 여성의 사진을 실은 미술담당책임자(art director)에게 직접 따져보았다.
"여성들은 잡지를 보면서 환상을 보고싶어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이상적인 것을
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실제의 여성을 보고싶지 않은 것이다. 설사 당신이라고 해서 아름다운 장면에
뚱뚱한 여성의 사진을 실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완전히 잡지를 망치는 길이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을 지킨다는 평판을 듣고 있는 이 잡지에서 실은 사진은, 운동만 한다면 뚱뚱한 사람도
건강해질 수 있다는 이 기사의 초점조차도 전혀 일치시키지 못하고 있다. 135파운드의 체중이
운동을 해야할 정도로 건강에 위협을 준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은 어떤 인식의 불일치 때문이다. 그는 잡지에 실리는 흠잡을 데 없이 날씬한
모델의 사진 때문에 독자들이 페이지를 넘길 수록 자신의 불완전성과 자기비하의 감정이 점점
커짐에도 불구하고 이를 계속 보고 싶어하는 이유와 어떤 관계성을 갖고 있는지 고려해본 적이
없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날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일종의 정신적 착란이라는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미술책임자들이 이러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잡지에 123파운드보다 더 나가는
여성의 사진이 실린다고 해서 여성독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책을 떨어뜨리진 않을 것임을 증명하는
몇몇 사례가 있다. 패션잡지 '글래머'(Glamour)는 어쩌다 한번씩 체격이 큰 모델들을 싣곤
했었는데, 독자들은 이를 보고 즐거워했으며, 12, 14, 16 사이즈 등 '실제 사이즈'의 여성들을
겨냥하고 있는 새로운 형식의 패션잡지 '모드'(Mode)는 가판대에서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다.
뚱뚱한 표지모델을 비롯한 이 잡지의 모든 모델과 편집자들은 이런 형태의 잡지에서는 처음 보게 된
자기 자신의 사이즈의 여성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고 위안을 얻었다는 독자들의 편지공세를 받고
있다.
너무 커서 TV에 못나온다?
TV에서도 패션잡지와 마찬가지로 뚱뚱한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다 뚱뚱한 사람들이 TV에
출연하는 것을 보면 이들은 대개 진지한 사람이 아니라, 익살스럽거나 혹은 살을 빼지 못해 비참한
삶을 '연명'하고 있는 불쌍한 토크쇼 출연자들로 그려진다. TV는 서커스에서나 나올법한 이런
변덕스러움으로 우리에게 제니 크레익(Jenny Craig)의 은총에 대해 새삼 일깨워주려고
한다.(역자 주 : 제니 크레익은 호주태생으로 세계적인 다이어트 업체인 제니 크레익
주식회사(Jenny Craig. Inc.)를 설립한 사람이다. 이 회사는 자체 개발(?)한 다이어트
프로그램과 다이어트 약물 및 건강약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내가 방송국 PD들이 체중에 대한 개별사실을 모으는 것을 돕고(하기야 그들중에 누가 그에 대해
스스로 연구하려고 하겠는가.) 프로그램의 소스를 제공했을 때, 몇몇은 내가 언급했던 출연진의
신체에 대해 따지고 들었다. "우리는 시청자들이 TV를 꺼버리게 만들고 싶지 않다."(이들은 정말
겁장이다. 시청자의 세대적 특성으로 인해 시청률 하락에 대해 더 염려할 만한 MTV조차 날렵하고
활기찬 여성들과 함께 매우 뚱뚱한 여성들을 기꺼이 촬영하려 한다.) 머리 포비치쇼(Maury Povich
show)의 한 프로듀서는 내가 그 쇼에 출연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뉴스위크지에 실린 나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설마 핫도그를 들고 있는 이 여자가 당신은 아니겠죠?
당신인가요?" 그는 내가 아닌 한 뚱뚱한 여성의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던 것이다. 그는 (나를 실제로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오 이런! 정말 잘됐네요."
언론이 뚱뚱한 사람의 대변자로서 나를 인정하는 이유중 하나는 내가 그 문제에 대해 무언가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살이 찌긴 했지만, 실제 뚱뚱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아이러니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마르지도 않았지만, 내가 충분히(TV에 나올 수 있을 만큼은 - 역자 주) 몸이
말랐으며, 갈색 머리와 예쁜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방송국 PD들은 다이어트 산업과 체중에 대한
강박관념의 문제들에 대해 나를 출연시키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들은 나와 같은 사람들이 다이어트
회사 및 제약회사들로부터 연구자금을 받는 의사들로부터 '비만'이라는 판정을 받는 것에 대해
일종의 모욕감을 느끼도록 어떻게 해서든지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번은 내가 다이어트
전문의를 몰래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나 역시 그 자리에서 체중감량제를 받았다. 방송국 PD들은
내가 건강하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멈추고 운동을 하며 건강한 식습관을 가지라는 나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고, 내가 그들을 위협할 만한 존재(TV 출연에 '부적당한' 정도로 살이 찐 사람 - 역자
주)가 아니기 때문에, 여성들이 체중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허비하고, 자신의 체력과 자부심을
훼손시킨다는 나의 주장에 대해 수긍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뚱뚱하다면, 그들은 나의 주장을
곧바로 뚱뚱한 사람들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물을
것이다. "뚱뚱한 사람이 뭐 어떤데요?" 결국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언론은 체중의 문제를 보다 긍정적이고 현실적으로 다루는 등 몇 걸음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청자들이 점점 뚱뚱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체중에 대한 농담이나 무시무시한 경고문, '체중감량 열흘 대작전' 따위의 소리를 이미 넘어섰으며,
1950년대 여성잡지에 실렸던 '임신 기간에 살을 빼야 한다' 등의 기사를 들어본 지도
오래되었다.(흥미롭게도, 사진이 전혀 실리지 않는 신문인 월스트리트 저널이 이제 다이어트
전문의, 제약공장, 체중감량제 등의 기사를 싣는데 가장 열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 배여있는 편견에 대해 사람들이 좀 더 열린 마음을 갖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무언가 변화를 꾀하는 언론의 시도 역시 입맛에 맞는 것을 고르느라
주저하게 된다. 밝은 피부색을 가진 흑인이 (짙은 색의 피부색을 가진 흑인보다) 여전히 TV에 더
많이 비춰지는 것처럼 말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넴(Gloria Steinem : 1934년에 태어난 미국의
페미니스트, 저널리스트. 38세였던 1972년에 'Ms.'라는 페미니즘지를 창간했다.
그의 저서 '여성망명정부에 대한 공상'이 국역되어 출판되어 있다 - 역자 주)의
예쁜 얼굴이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 도처의 불쾌해 보이던 레즈비언들을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함으로써 그를 페미니스트 언론의 지도자로 만들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렇다. 나오미 울프(Naomi Wolf : 미국의
페미니스트, 연설가. 유능한 언변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 역자 주)가
'미(美)에 대한 정치의 추함'(the ugly politics of beauty)을 이야기했다고 해서,
그의 매력에 손해를 끼친 것은 없었다.
내가 뚱뚱하지 않기 때문에 언론이 비만에 대한 나의 주장을 경청한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 깨닫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제안하건대, 언론은 이런식으로 나를 더이상 괴롭히지 말았으면 한다
.
※ 로라 프레이저의 책 '살빼는 것 : 체중에 대한 미국인의 강박관념과 이를
강화시키는 다이어트 산업(Losing It : America's Obsession with Weight and
the Industry that Feeds It)'이 최근 더튼(Dutton)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